《박광진: 자연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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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rt 댓글 0건 조회 295회 작성일 24-12-16 17:13작가명 | 박광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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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 2024-12-12 ~ 2025-02-09 |
휴관일 | 1월1일 , 매주 월요일 |
전시장소명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층 전시실 |
전시장주소 | 04515 서울 중구 덕수궁길 61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
관련링크 | https://sema.seoul.go.kr/kr/whatson/exhibition/detail?exNo=1352497 20회 연결 |
<전시 기획의 글>
자연의 속삭임이 울림으로: 한국 구상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24년 한 해의 끝자락에서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봄을 기다리며 《박광진: 자연의 속삭임》을 개최한다. 박광진(1935년생)은 우리나라 구상 회화사의 발전과 전개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한 작가로 평가된다.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재학 중에 1957년 《제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작품 〈국보(國寶)〉로 특선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한국 구상회화의 체계적 성장과 아카데미즘의 초석을 다진 목우회(木友會)의 창립 회원으로서 활동했다. 1965년에 야외 사생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일요화가회를 결성하였고, 민족기록화 사업에도 참여한 그는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작가는 화단에서 사실적인 화풍과 섬세한 묘사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2000년대 이후 완숙기에 접어들며 그 단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후기 작품들은 사실적인 풍경과 기하학적 요소를 결합하여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자연의 속삭임》이라는 전시 제목은 “자연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내게는 들려온다. 그런 감각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비롯되었다. 자연의 소리를 화폭에 어떻게 옮길지 고민한다는 말이 고승의 선문답처럼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작가의 예술 세계에서 이 화두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박광진은 서울교육대학 교수, (사)한국미술협회 이사장, IAA(국제조형예술협회) 수석부회장 등 미술계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며 업적을 남겼지만, 본 전시는 교육자이자 행정가로서의 면모보다는 70여 년간의 순수한 창의적 예술 여정에 집중하고자 한다. 작가는 평생 1,100여 점의 작품을 쉼 없이 창작해 왔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과 그의 대표작을 선별하여 117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는 '탐색: 인물, 정물, 풍경', '풍경의 발견', '사계의 빛', '자연의 소리'라는 네 개의 세부 주제로 나뉜다. 이를 통해 작가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한 여러 갈래의 탐색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작품 세계의 발전과 확장 과정을 점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첫 번째 섹션인 ‘탐색: 인물, 정물, 풍경’에서는 박광진의 첫 유화 작품인 〈창경원 입구〉(1952)를 시작으로, 한국 구상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기여한 이봉상, 손응성, 박수근 등의 영향을 받으며 여러 소재를 대상으로 예술적 방향성을 모색하는 과정을 다룬다. 이어지는 ‘풍경의 발견’에서는 작가가 점차 풍경화에 관심을 기울이며 포착한 여러 경관을 살펴본다. 그는 1967년부터 1990년대까지 농촌과 도시 주변의 아름다움을 그리며, 세계 각국의 명소를 탐방해 작품 세계를 확장해 나갔다.
‘사계의 빛’에서는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그린 한국의 순수 자연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풍경화를 선보인다. 후기 작품이 온전히 자연을 다루되 작가의 주관적 감상을 가미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군은 그의 예술 여정에서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다. 작가는 특정 지명을 제목에 언급할 정도로 자연 그대로의 대상을 찾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으며, 섬세한 빛의 묘사를 통해 예술적 표현력과 사실성을 극대화한다. 사계절에 따른 우리나라의 경관을 그린 작품은 일각마다 변하는 빛의 변화를 뚜렷하게 포착하여 한국의 자연미를 세심하게 구현했다. 특히 물에 비친 자연경관을 담은 풍경화는 이 시기 작품 중 정수(精髓)라 할 수 있는데, 실제 모습과 거꾸로 비춰지는 상을 동시에 표현함으로써 공간감을 확장시키고, 물 표면의 윤슬은 빛의 효과를 배가하여 시각적 깊이를 더한다.
마지막으로, ‘자연의 소리’에서는 1990년대 이후 작가가 제2의 고향과 같은 제주 특유의 환경에서 자라는 억새와 유채에 관심을 기울이며, “단순한 묘사가 아닌 자연의 소재가 집약되고 응축된 화면을 보여주고자” 여러 방향으로 새로운 구상미술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시기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갈색 필터를 낀 듯한 화폭 전면에 보이는 억새는 세밀한 붓질로 표현되는 반면, 배경은 생략되거나 단순화되어 제주 가을의 빛과 바람을 감성적으로 담아낸다. 또, 프랑스 메스(Metz) 지역의 유채밭과 유네스코 파리 본부에서 본 헤수스 라파엘 소토(1923-2005)의 줄무늬에서 영감을 받아, 화폭에 가느다란 세로선을 도입한다. 각각의 수직선은 개개의 위상이 다른 개별 음표처럼 개체의 소리를 형상화하고, 그 선이 반복되어 자연 현상 고유의 리듬과 박자를 표현한다. 그리고 일부 작품에서 보이는 원경과 근경의 표현 방식도 특징적이다. 중경(中景)이 생략된 구도에서, 멀리 보이는 산이나 나무는 그 형태를 유지하지만, 가까운 풍경은 정밀하게 묘사되기보다 오히려 뭉개지거나 덩어리지듯 표현된다. 이 흥미로운 표현 방식에 대해서 작가가 평생 모색해 온 자연주의 회화에 색면 추상을 더하는 방식으로 추상성과 사실성이 공존하는 독특한 조형미를 선보였다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내가 구상작가라는 사실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라는 작가의 말에 비추어 보면, 이 기법을 구상회화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여지가 있다. 〈파고다 탑〉(1957), 〈탑〉(1968)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초기부터 부분을 확대하여 그 질감을 세밀하게 묘사해 왔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그 덩어리는 시선을 근경의 사물에 고도로 밀착했을 때 보이는 유채꽃 표면의 단색 픽셀일 수 있다. 게다가 (1962) 등에서 보이는 가축우리의 사각 테두리 단위로 공간을 나누는 방식은 전체 경관을 분할하고 재구성하여 원경과 초근경만을 남기어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구도의 모태일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구성은 화면을 더욱 압축된 느낌으로 만들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정물, 인물, 풍경 등 구상회화의 여러 장르에서 풍경으로, 갖가지 풍경 중 순수 자연으로, 자연에 대한 사실적 묘사에서 응집되고 축약된 표현으로 평생에 걸친 박광진의 예술 세계는 ‘자연의 속삭임’에 응해 작가가 화폭에 그려나간 일련의 대답인 듯하다. 그리고 그 응답은 “구상이 한없이 자기 변신을 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안 해요.”라는 자기반성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부단히 고민하고 변화한 결과물이다. 2010년 이후 단색화의 열기로 인해 추상화가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분위기에 최근 AI 기술을 활용한 회화의 예술성이 논란이 되는 오늘날, 우리 구상회화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라는 물음은 사뭇 무겁게 느껴진다. 이러한 시기에 구순(九旬)을 목전에 둔 화가의 행보는 우리에게 속삭임을 넘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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